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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지은이 : 니코스 카잔차키스
- 출판사 : 애플북스
- 발행일 : 2007-10-27
- 공급사 영풍문고
- 보유권수 5권
- 대출 0권
- 예약 0권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초월적 대서사시!
그의 목소리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 아주 작고 여렸다. 마치 죽음의 저쪽 기슭에서 메아리쳐 오는 소리 같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무슨 말인가를 더 듣기 위해 귀를 한껏 기울였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우리 모두는 일제히 그의 시신에 엎드려 입을 맞추고 목을 놓아 울었다.
내 자그마한 방에서 잔뜩 웅크리고 이 마지막 몇 마디를 쓰다가 나는 사랑하는 신부 생각으로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때 작은 참새 한 마리가 창가에서 서성이며 부리로 문을 똑똑 두드렸다. 참새의 날개는 비에 흠뻑 젖어 있어 무척이나 추워 보였다. 나는 안쓰러워서 문을 열어 새를 방안으로 들였다.
그런데, 프란체스코 신부님, 그 새는 바로 당신이군요. 자그마한 참새로 차려입으신 당신이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서거 50주기를 맞으며
1957년 10월 26일, 독일 남서부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리스의 한 작가가 숨을 거두었다.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고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할 만한 작가로 인정받았다. 그의 이름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이다. 이미 우리에게《그리스인 조르바》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긴긴 방황과 망명생활을 죽어서야 자신의 고향인 크레타 섬에 묻힘으로써 끝맺을 수 있었다.
말을 배우기 전에 그는 그리스 바다를 알았고, 글을 배우기 전에 그리스 신화의 내밀성을 깨달았으며, 아프리카 대륙의 열병에 빠지고 아시아 대륙의 이국성에 매료되어 세계를 방랑하며 살았던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는 니체와 베르그송에 심취했으며, 호메로스와 조르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야생마처럼 자유분방한 실제 인물 조르바를 소설로 옮겨놓은《그리스인 조르바》는 ‘절대 자유자’로서의 초인을 꿈꾼 작품이다.
질서의 파괴나 혼돈에 대한 지향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자유를 위한 영혼의 투쟁’을 표현하고자 했던 카잔차키스는《그리스인 조르바》를 창작한 7년 후, 자기해방의 실천에 생을 바친 한 성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작품이 바로《위대한 성자 프란체스코》이다.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서거 50주년이 되는 2007년 10월에 우리는 그를 다시 만난다. 이제 우리는 실제 인물 조르바에 이어 13세기 위대한 성인이었던 프란체스코에 다시 주목하게 된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위대한 성자가 되기까지 프란체스코의 피나는 고난의 여정을 기록한 이 책을 통해서, 구속과 경쟁, 절망과 자살, 전쟁과 약탈, 분노와 보복, 부의 양극화 등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꿈꾸는가?’라는 물음을 다시 고민하게 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프란체스코
그는 어린 시절, 터키에 대한 반란에 가담했다가 학살당한 할아버지의 칼자국 난 두개골을 보고 인간의 초월성을 고민했고, 프란체스코처럼 영웅적인 성인을 꿈꾸었다. 어느 날 카잔차키스는 아시시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을풍경에 빠져 길을 걷다가, 프란체스코와 슈바이처가 나란히 손을 잡고 올리브 숲 속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두 사람에게서 공통적인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천형天刑이라고 할 수 있는 문둥이마저도 사랑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카잔차키스에게 프란체스코의 의미는 남달랐다. 다음은 동료이자 아내였던 헬렌 카잔차키스가 남편이 죽기 전에 옮겨놓은 글이다.
열병에 들떠서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프란체스코가 내 침대 맡에서 허리를 굽히고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을 못 이루고 있으면 그는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 가난한 작은 형제가 들려준 말의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에서 심리분석을 시도할 의향은 없다. 다만, 내가 흥미를 끄는 것은, 우리가 겁을 집어먹거나 아니면 이상을 버렸기 때문에 잠재워 버리고 죽어가게 만들고 있는 인간의 영혼 안에 존재하는 어떤 힘이다. 성자 프란체스코는 현대인으로 탈바꿈한다. 그것은 그가 가슴 속에서 우주와의 완벽한 조화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그의 심장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빈곤, 불의, 폭력이 빚어 놓은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찾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카잔차키스에게 성자 프란체스코는 역사 속의 한 인물이나 수많은 성인들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다시 재림을 약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顯顯이나 다름없었다. 프란체스코의 힘든 여정은 성자로서의 고난이기도 하지만, 나약한 인간으로서 자기해방의 실천을 위한 고난이기도 하다. 프란체스코는 청빈과 사랑으로 탁한 세상은 물론, 자기 자신과 투쟁을 해나갔다. 즉 영혼의 초월적 존재를 진심으로 찾아 나선 것이다. 바로 이 투쟁의 여정이 카잔차키스를 감동시켰다.
이 위대한 성자의 고난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그의 인생에서 용기를 얻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