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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지은이 : 공양자
- 출판사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발행일 : 2018-02-21
- 공급사 영풍문고
- 보유권수 5권
- 대출 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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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春秋)≫는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편년체(編年體) 사서(史書)다. 약 1만 6000여 자의 분량으로 노(魯)나라 은공(隱公) 원년(元年, BC 722)부터 애공(哀公) 14년(BC 481)까지 242년의 역사 기록이다. 이 기간을 역사에서는 춘추 시대라고 한다. ≪춘추≫는 또한 ≪춘추경≫이라고도 부른다. 맹자(孟子)에 따르면 춘추 말기 공자(孔子)가 기존의 노나라 역사 기록을 근거로 정리해 ≪춘추≫를 편찬했다고 한다. 때문에 후세 유가에 의해서 경(經)으로 높여졌다.
≪춘추≫가 후세에 끼친 영향은 심대하다. 맹자 이후 ≪춘추≫는 공자의 뜻이 담긴 지고한 경전으로 추존되었다.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춘추대의(春秋大義)에 대한 앙모와 존중은 선유들의 정신에 스며들었고 그에 부합하는 삶을 지향하게 만들었다. 조선(朝鮮)의 경우, 주지하듯 친명배원(親明排元) 정책으로부터 북벌론(北伐論) 및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고비마다 ≪춘추≫는 정치적 명분의 기준점이 되었고, 사회의 기풍을 선도했으며, 선비의 정신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춘추≫는 연도순으로 사건을 기록한다. 해마다 춘하추동의 사시(四時)가 먼저 제시되고 사시에는 월(月)과 일(日)이 배속되며 날짜는 간지(干支)로 표시한다. 사건은 조목(條目)으로 나누어 기록되어 있으며 긴 것은 47자, 짧은 것은 1자다. ≪춘추≫의 내용은 대부분 정치 사건인데 전쟁 및 그와 관련한 회맹(會盟) 기록이 특히 많다. 그 외에 제사나 혼상(婚喪) 그리고 일식, 월식, 지진 등 자연 현상을 기록했다. 다만 ≪춘추≫의 기록은 지나치게 소략하다. 기록 당시 살았거나 시대적으로 근접한 사람들이야 내용을 알 수도 있었겠지만 시대가 흐른다면 더욱 해독하기 어려워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공자 후학들이 ≪춘추≫에 대한 해설을 전수해야 했던 이유다. ≪한서 · 예문지(漢書藝文志)≫에는 당시 ≪춘추≫를 해설한 대표적 학파로 좌씨(左氏), 공양(公羊), 곡량(穀梁), 추씨(鄒氏), 협씨(夾氏)를 수록했다. 추씨와 협씨는 사라졌고 현재는 좌씨, 공양, 곡량 세 학파만이 전승된다. 이들 세 학파의 해설서인 ≪좌씨전(左氏傳, 간칭 ≪좌전≫)≫,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을 춘추삼전(春秋三傳)이라 한다.
삼전을 대별하면 ≪좌전≫은 사학적 성격이 강하고, ≪공양전≫과 ≪곡량전≫은 경학적 성격이 강하다. ≪공양전≫은 ≪춘추≫의 개별 기록에서 문자의 운용에 따른 의미 차이를 밝히고, 비교와 귀납을 통해 그 서법의 규칙을 밝혀 ≪춘추≫의 대의를 설명한다. 때로는 한 번의 의론을 통해 여러 사례를 포괄하기도 한다.
≪춘추≫는 근엄하고 난해하다. 삼전은 춘추학의 원점(原點)이자 정점(頂點)이다. 삼전을 모두 보지 않고는 ≪춘추≫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공양전≫은 ≪춘추≫의 오의(奧義)를 풀기 위해 경문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이런 집요한 천착에서 공도 과도 나왔다. 비록 ≪공양전≫이 역사 고증에 소홀하고 이로 인한 억측이 적지 않지만 경문에 대한 훈고와 조례를 밝힌 공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양전≫이 전해진 지 이미 2000여 년이 되었다. 그동안 ≪공양전≫과 공양학은 황제를 위해 사용되기도, 중앙 집권을 유지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유신을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변법개제가 공자의 뜻이라는 논거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런 역정(歷程)에서 ≪공양전≫과 공양학은 중국 정치사 학술사 사상사 경학사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경학의 시대는 끝났지만 ≪공양전≫은 우리에게 과거의 중국과 미래의 중국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