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는 1877년 7월 2일 남부 독일 칼브에서 선교사인 아버지 요하네스와 선교사의 딸로 인도에서 성장한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의 장남으로 태어난다. 고향 칼브와 스위스 바젤에서 유년기를 지내고, 라틴어 학교를 거쳐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시인이 되거나 아니면 전혀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7개월 만에 도망친다. 서점에서 일하며 1898년 첫 시집 ≪낭만의 노래≫를 발표한다. ≪페터 카멘친트≫(1904)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신문 잡지에 기고하며,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 포로 후생 사업소에 근무하지만, 1916년 아버지 사망, 부인의 정신 분열증, 막내아들 발병으로 충격을 받고, 카를 구스타프 융과 B. 랑 박사에게 정신 치료를 받는다. 1919년 가족을 떠나 스위스 남부의 몬타뇰라로 이주해 수채화를 그리고,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데미안≫을 발표한다.
1924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고, 루트 벵거와 재혼한다. 히피들의 성서가 된 ≪황야의 이리≫(1927)로 절정을 이루지만, 1939 ~ 1945년 헤세 작품은 독일에서 "원치 않는 문학"이 되고, 나치 관청은 책 출판을 허락하지 않는다. 예술사가 니논 돌빈과 세 번째 결혼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만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로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베른대학 명예박사, 괴테 문학상, 독일 서적 협회 평화상 수상 등 세계적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1962년 8월 9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이인웅(李仁雄)은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청주중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독일 정부 초청(DAAD) 장학생으로 뮌헨대학교와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1972년 헤르만 헤세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실장, 교무처장, 통역대학원장, 부총장 등의 보직을 수행하고, 문교부 국어 심의회 외래어 표기 분과위원, 교육부 국비 유학 자문위원, 한국 학술진흥재단 인문 분과위원(장), 각종 고등 고시위원, 한독협회지 초대 편집인, 한국헤세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ADeKo(독일 동문 네트워크) 이사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Ostasiatische Anschauungen im Werk Hermann Hesses≫(독일), ≪작가론 헤르만 헤세≫(편저),≪현대 독일 문학 비평≫,≪헤르만 헤세와 동양의 지혜≫,≪파우스트. 그는 누구인가≫(공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선(禪). 나의 신앙≫, ≪수레바퀴 아래서≫, ≪이별을 하고 건강하여라≫, ≪크눌프. 황야의 이리≫, ≪인도 여행≫, 수필선 ≪최초의 모험≫, ≪헤세 시선≫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헤르만과 도로테아≫, ≪파우스트≫ ;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방송극집 ≪고장≫ ;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 : 밀레나에게≫ 등 50여 권이 있다. 그리고 학술 논문으로 <Hermann Hesse und die taoistische Philosophie>(스위스), <헤르만 헤세와 불교>, <I Ging, das Buch der Wandlungen, im Glasperlenspiel von H. Hesse>(독일), <헤세의 도가 사상>, <괴테의 초고 파우스트 연구>, <파우스트의 구원과 그 문제성>, <그라베의 대립적 세계관>, <정신 분석과 헤세의 문학 창조> 등 50여 편이 있다. 그 외에도 문학과 삶에 관해 각종 신문 잡지 등에 250여 편의 글을 쓰고, 여러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국내외에서 많은 초청 강연을 했다.